벽 등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산이나 계곡에서 "야호~" 하고 외치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야호~!" 하고 돌아오는 메아리를 들으며 그 되돌아오는 소리가
사실은 슬픈 사랑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믿어지시나요?
오늘 소개할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인공은, ‘메아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요정,
**에코(Echo)**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말하지 못한 사랑, 외면당한 존재, 그리고 사라져도 남는 감정의 잔향에 대해 말해줍니다.
에코, 말을 사랑한 요정
에코는 올림포스 산의 님프(자연을 수호하는 요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는 특히 말을 좋아하고 잘했어요.
수다스럽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사람들과 신들을 웃기며,
어디서든 존재감을 드러내던 요정이었죠.
그러나 그녀의 말은 때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자주 요정들과 몰래 어울리곤 했는데, 그 사실을 의심하던 여신 헤라는 언제나 증거를 잡지 못했어요.
그 이유는 바로 에코가 제우스를 위해 시간을 끌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여신님, 머리 모양이 정말 아름다우세요! 어디서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잠깐만요, 이쪽으로 오셔야 더 잘 보일 거예요!"
에코는 자신의 수다로 헤라의 눈과 귀를 흐리게 했고, 결국 제우스는 언제나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목소리, 사랑을 잃다
진실을 알게 된 헤라는 분노했고, 에코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립니다.
"너는 앞으로 절대로 먼저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남의 마지막 말을 따라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에코는 자유로운 언어를 잃었습니다.
자유로운 언어를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스스로 말을 창조하지 못합니다.
대화를 좋아하는 에코에게는
더 이상의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요.
타인의 마지막 말만을 그대로 반사하는 존재, 즉 ‘메아리’가 됩니다.
이것은 에코라는 존재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입니다.
마치 화가에게는 붓을 쥘 수 없게 하고,
작곡가에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죠.
출처 입력
그녀는 여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 더는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에코는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Narcissus)**를 숲속에서 보게 됩니다.
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에코는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그저 메아리일 뿐이었습니다.
“누구 없어요?”
“…없어요.”
“여기 누구 있나?”
“…있나…”
그가 “이리 와!”라고 말했을 때, 에코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녀를 본 나르키소스는 놀라며 소리칩니다.
“가버려!”
“…버려…”
거절당한 에코는 수치심과 절망에 빠져, 한적한 곳으로 숨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사라져가며, 오직 목소리만이 남게 되었어요.
그 후로, 누군가 외치면 그 말을 따라 되돌려주는 메아리로 에코는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몰랐던 청년, 나르키소스의 최후
한편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무심히 거절해 왔습니다.
그의 찬 바람 같은 태도에 상처 받은 이들이 많았고, 결국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나섭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어다.”
그 저주처럼, 어느 날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만질 수도 없고, 다가가면 흐려지는 그림자 같은 사랑이었죠.
그는 점점 물속의 ‘자신’에게 집착했고, 결국 그 사랑에 스스로를 잃고 말았다고 전해집니다.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는 **수선화(Narcissus)**가 피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자기애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AI 활용 설정
픽셀제공, 수선화
에코의 외로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이야기는 단순히 신화 속 비극으로 끝나지 않아요.
오늘날에도 우리는 ‘에코’처럼 마음을 전하지 못해 외로운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서 생깁니다.
누군가의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과 마음을 주고 받지 못하는 사람,
자기 자신과 더 멀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것.
에코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에요.
우리 마음 깊은 곳, 전하지 못한 사랑의 소리로 살아 있습니다.
산속을 걷다가 들리는 메아리.
그건 단순한 반향이 아니라, 아마도 에코가 우리 마음에 속삭이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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